이번 판결의 핵심은 바이낸스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거래소의 규제위반 이력이 ATA/JASTA상 특정 테러공격 책임으로 이어지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입증되어야 하는지를 어디에 두었는지에 있다.
핵심 요약
이번 결정은 사실심리 후의 최종 판단이 아니라, 소장 단계의 기각신청(Rule 12(b)(6)) 인용이다.
법원은 general awareness 가능성은 일부 검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책임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봤다.
결정적 이유는 개별 공격과의 구체적 연결, 즉 definable nexus의 부족이었다.
이번 판결을 단순히 “바이낸스가 이겼다”는 한 줄로 읽으면 중요한 지점을 놓치게 됩니다. 2026년 3월 6일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Troell v. Binance Holdings Limited 사건에서 바이낸스, 자오창펑, BAM Trading을 상대로 한 ATA/JASTA상 청구를 Rule 12(b)(6) 단계에서 기각했고, 원고들에게는 60일 내 수정소장 제출 기회를 남겨두었습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535명의 피해자 또는 유족이고, 문제 된 공격은 64건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을 “바이낸스에 대한 모든 의혹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읽는 것도, 반대로 “규제위반 전력이 있으니 테러공격 책임도 사실상 인정된 셈”이라고 읽는 것도 모두 정확하지 않습니다. 법원이 실제로 본 쟁점은 훨씬 좁고도 까다로웠습니다. 거래소의 규제위반 이력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테러공격에 대한 ATA/JASTA상 민사책임으로 바로 이어지려면 피고의 행위와 개별 공격 사이에 더 촘촘한 법적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 판결의 핵심입니다.
사건 개요: 무엇이 기각됐고, 무엇은 아직 닫히지 않았나
규제위반 정황이 곧바로 특정 공격 책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의 64건 공격을 문제 삼으면서, 하마스,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헤즈볼라, 이란혁명수비대(IRGC), 알카에다, ISIS 등과 연계된 자금 흐름이 바이낸스 플랫폼을 거쳤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지금 단계는 사실심리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실이 확정된 단계가 아니라, 소장에 적힌 주장들을 전제로 하더라도 청구요건이 충족되는지를 따지는 소장 단계 심사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무혐의 확인”도 아니고, 반대로 “테러 지원 사실 인정”도 아닙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원은 현재의 수정소장만으로는 ATA/JASTA가 요구하는 청구 구조를 넘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지점이 바로 이 글에서 봐야 할 포인트입니다.
왜 이 판결이 중요한가: 규제위반 이력과 테러공격 책임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바이낸스에는 이미 무거운 배경사실이 있습니다. 2023년 미국 법무부는 바이낸스가 AML, 무허가 자금이전, 제재 위반과 관련한 혐의를 인정하고 4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해소에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자오창펑 역시 효과적인 AML 프로그램 유지 실패와 관련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이 점만 보면 독자는 “그렇다면 이번 민사사건도 당연히 피고에게 불리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규제당국의 제재 사건과 ATA/JASTA 민사소송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전자는 거래소가 BSA·AML·제재 체계를 위반했는지를 묻는 반면, 후자는 그 위반 또는 방치가 특정 국제테러 행위에 대해 “knowingly providing substantial assistance”에 해당하는지를 묻습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규제위반 전력은 강한 배경사실이 될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개별 공격 책임이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ATA/JASTA가 실제로 묻는 질문
미국 연방법 18 U.S.C. § 2333(d)(2)는 국제테러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해당 행위를 저지른 자를 “aid and abet, by knowingly providing substantial assistance”한 자에 대한 책임을 주장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단순히 문제가 많은 사업을 운영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특정 테러행위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알고도 실질적 도움을 줬는지가 쟁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보조책임 판단 틀에 따라 두 갈래를 나눠 봤습니다. 하나는 피고가 국제테러 전반에서 자신의 역할을 일반적으로 인식했는지, 즉 general awareness이고, 다른 하나는 피고의 행위가 문제 된 공격들에 대해 knowing and substantial assistance에 해당하는지입니다. 블로그 독자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앞 단계가 어느 정도 충족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뒤 단계까지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원은 어디까지는 받아들였나: general awareness
흥미로운 부분은 법원이 원고들의 주장을 전부 배척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판결문은 현 단계에서 원고들이 바이낸스가 플랫폼이 테러자금 흐름에 이용되는 구조 속 자신의 역할을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즉 general awareness 요건은 일응 주장했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보도와 보고서, FTO 연계 지갑의 거래 정황, 관련 경고의 존재 등을 종합해 이 부분은 소장 단계에서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곧바로 “법원이 바이낸스의 테러 인지 사실을 인정했다”고 써버리면 과합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원고 주장만 놓고 볼 때 해당 요건이 주장 단계에서 검토 가능하다는 의미에 가깝지, 최종 증거조사 후 사실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을 안전하게 설명하려면 이 선을 끝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결정적 이유: 구체적 연결고리, 즉 definable nexus의 부족
결국 소송이 무너진 지점은 세 번째 문턱이었습니다. 법원은 수정소장이 피고의 행위와 원고들이 입은 64건의 공격 사이에 “definable nexus”, 즉 구체적 연결고리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판결문은 바이낸스의 AML/CFT 회피, 제재 대상 국가 사용자 유치, 불법행위자 수용 같은 광범위한 문제 제기는 상세히 검토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이 특정 공격을 알고도 실질적으로 도왔다”는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법원은 자금의 대체가능성, 플랫폼 서비스의 일반성, 그리고 거래와 공격 사이의 거리감을 중요하게 봤습니다. 예컨대 판결문은 ISIS 관련 청구에 대해 공격 전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지적했고, 하마스·PIJ 관련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보다 더 강한 사례라고 보면서도 여전히 거래의 성격, 시점, 주체, 공격과의 연계에 관한 세부가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즉 “의심스러운 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 거래가 이 공격의 실행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이야기는 법적으로 다른 층위라는 뜻입니다.
하마스와 PIJ 부분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판결문은 원고들이 2017년부터 2024년까지 하마스 식별 지갑을 통한 약 5,600만 달러, PIJ 식별 주소를 통한 약 5,9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주장했고, 2019년부터 바이낸스가 하마스 관련 거래 경고를 받았다는 취지의 서술도 적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주장이 “더 가까운 사례”일 수는 있어도, 개별 공격과의 연결을 합리적으로 도출할 정도로 구체화되지는 않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또 다른 우회 논리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원고들은 바이낸스의 지원이 너무 체계적이고 광범위해서 FTO의 모든 예견 가능한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는 취지로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위해 필요한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특히 하마스나 PIJ와 공통사업(common enterprise)을 형성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부족하다는 점이 강조됐습니다.
왜 Raanan과 달랐나: Ashley 이후의 기준
이 사건을 더 잘 이해하려면, 많은 독자가 떠올리는 또 하나의 바이낸스 사건인 Raanan v. Binance와의 차이를 봐야 합니다. 2025년 2월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Raanan 사건에서 일부 ATA 청구를 소장 단계에서 살려두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비슷한 사건인데 왜 이번엔 기각됐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Troell 판결은 이 질문에 직접 답합니다. 바르가스 판사는 Raanan이 2025년 7월 제2순회항소법원의 Ashley 판결 이전에 나온 결정이라고 짚으면서, Ashley를 적용하면 이번 사건은 달리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Ashley는 광범위한 자금세탁 또는 불법 금융서비스 정황만으로는 테러공격에 대한 보조책임을 쉽게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공격과의 연결이 멀수록 피고가 의식적이고 비난가능한 방식으로 그 공격을 도왔다는 점이 더 선명하게 제시돼야 한다고 봤습니다. Troell은 바로 이 프레임을 따라 Raanan보다 더 엄격하게 nexus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건을 “정반대 판결”로 소개하는 것은 다소 거칠고, 더 정확한 설명은 “Ashley 이후 입증 문턱이 더 선명해졌고, Troell은 그 문턱을 엄격히 적용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 포인트를 짚어주면 단순 뉴스 요약이 아니라 판례 흐름을 읽는 글이 됩니다.
업계가 읽어야 할 시사점: 컴플라이언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민사책임의 문턱은 높아도,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을 거래소 업계의 “면죄부”처럼 읽는 것도 위험합니다. 판결문 자체가 바이낸스에 관한 광범위한 AML/CFT 회피, 불법행위자 수용, 제재국 사용자 대응, VIP 계정 보호, SAR 미제출 정황 등을 상세히 요약하고 있고, 2023년 DOJ 합의 역시 AML·무허가 자금이전·제재 위반이라는 별도의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즉 이번 기각은 “컴플라이언스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제가 곧바로 특정 공격 책임으로 치환되지는 않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원고나 규제 리스크를 점검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드러납니다. 플랫폼 차원의 느슨한 통제, 수상한 이용자 유치, 제재 회피 정황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계정·지갑·중개자·시점·거래가 어떤 공격 실행과 실제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더 미세한 사실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법원이 수정소장 제출 기회를 남겨둔 이유도 바로 이런 세부 보강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이번 판결은 ‘승패 뉴스’보다 ‘기준 뉴스’에 가깝다
이번 판결은 바이낸스가 완전히 깨끗하다는 선언도 아니고, 테러공격 지원이 입증됐다는 판정도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 반테러 민사소송에서 거래소의 규제위반 이력과 특정 공격 책임 사이에 어떤 법적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즉, 플랫폼이 불법행위자에게 널리 열려 있었다는 사정과, 특정 공격을 알고도 실질적으로 도왔다는 사정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Troell 판결은 그 차이를 다시 한 번 선명하게 그어준 결정이고,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승패 기사보다 “어디서 책임의 선이 그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기준 판결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